족보
  • 지광한(池光翰)
  • 충주지씨(忠州池氏),  출생~사망 : 1659 ~ 1756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휘보(輝甫). 호는 설악(雪嶽), 대충와(大蟲窩). 청주(淸州) 와송리(臥松里)에서 출생하였다. 7세에 '소학(小學)'을 배우고, 9세에 문리(文理)를 깨우쳤다. 21세 때 모친이 사망하고, 2년 뒤 부친도 세상을 떠나자 문의(文義)로 이주하여 빈한한 생활을 했다. 34세 때 청주병영(淸州兵營)에 지내며 이봉상(李鳳祥), 남연년(南延年)과 교유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이봉상과 남연년이 죽자 다시는 왕록(王綠)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1731년(영조 7) 함안(咸安)의 안인촌(安仁村)으로 이사하여 '홍사(鴻史)'를 지었다. '지씨홍사(池氏鴻史)' 라고도 불리는이 책은 반고(盤古) 에서부터 명(明) 나라까지 제왕통기(帝王統紀) 16편, 열전 32편 등으로 편제되어 있다. 1734년(영조 10) 진양(晋陽), 사천(泗川) 등지를 유람하며 유림시객(儒林詩客)들과 교유하다가 함안으로 돌아와 자호를 대충와(大蟲窩)로 지었다. 이외 취은준(醉隱寯), 취은옹(醉隱翁), 설루자(雪樓子), 은구암(隱求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43세 때는 현풍현(玄風縣)으로 이사하여 서당을 열어 제자들을 키웠다. 또 '기전첩록(紀傳捷錄)'을 편술하기도 했다. 48세 되던 해인 1742년(영조 18) 다시 공주(公州) 한적동(寒寂洞)으로 이사하였다. 53세 때 '지씨가훈(池氏家訓)'과 '자림(字林)'을 저술했고, 이듬해에는 '소학조례(小學條例)', '절주음(絶酒○)'을 지었다. 이때 자호를 설루자(雪樓子) 라 했으니, 이는 앵화설월(櫻花雪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후 60세 때 남쪽을 여행하다 가야산(伽倻山)에서 대설을 만나니 자호를 설악(雪嶽)이라 짓고 '설악전(雪嶽傳)'을 지었다. 1756년(영조 32) 7월 4일 사망하여 공주 낭월(朗月), 지금의 대전시 동구 낭월동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