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회숙(晦叔). 호는 지관재(止觀齋). 대사헌 장원(長遠)의 아들이다. 1657년(효종 8) 진사시에 합격하고 사복시주부, 홍산현감, 강서현령(江西縣令), 장악원 주부, 세마(洗馬), 공조정랑, 김제군수, 여산군수(礪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일찍이 학문이 뛰어나고 지조가 곧았다. 성균관 태학생(太學生)시절에 모두가 서로 아첨하여 무리짓기를 좋아하였는데, 그는 장차 더럽혀질 것을 염려하여 그 어느 것에도 좇지 않았다. 또 대사성이 석채(釋菜)에 불참한 학생들에게 과거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자, 이에 굽히지 않고 질타하였다. 특히 효성이 지극하고, 청백리에 뽑혔다. 저서로는 '지관재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