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화중(花仲). 형조판서 만원(萬元)의 아들이다. 수원에서 살았는데, 1828년(순조 28)에 화성유생응제시(華城儒生應製試)에서 뽑혔고, 교관으로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44년(헌종 10)에 이조참판, 1845년 예조, 형조의 판서를 거쳐, 1846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 그뒤 중앙으로 돌아와 1848년에 대사헌이 되고, 이어 이조판서를 역임한 뒤 1849년(철종 즉위년)에는 우참찬이 되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