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형보(馨甫). 예안 출신으로, 현감 덕홍(德弘)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 36)에 진사가 되었고 1615년(광해군 7)에 찰방으로서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는데 두 동생 입, 모(慕)와 함께 삼형제가 동시에 합격하였다. 그해에 낭리(郞吏)로서 사관에 추천되었으며, 1616년 대교, 봉교, 부교리 등을 거쳐, 1617년에 사서, 정언이 되었다. 이어 수찬이 되어서는 이이첨(李爾瞻), 허균(許筠), 김개(金○) 등과 어울려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주장에 방조하는 구실을 하였다. 1616년에 허균의 역모에 연루되어 파직되었고 이어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인조 즉위 뒤에는 처형되었다. 그는 당시에 드물게 보는 명경현사(明經賢士)로서 재주가 있었다는 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