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행지(行之). 호는 남간(南磵). 아버지는 호조참판 장흠(長欽)이며, 작은아버지인 공조참의 대흠(大欽)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남위(南瑋)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예조좌랑 겸 기사관(禮曹佐郞兼記事官), 지제교(知製敎)로 국사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뒤 병조좌랑을 거쳐, 경기도도사로 병자호란에 공을 세우고, 이어 수찬(修撰), 지평(持平), 헌납(獻納)을 거쳐, 1645년 교리, 이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49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성, 대사간, 승지, 예조참의 등을 거쳐, 1653년(효종 4) 황해도관찰사가 되고, 이듬해 정언(正言), 1655년 승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