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서명형(徐命珩)
  • 대구서씨(大丘徐氏),  출생~사망 : 1687 ~ 175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행옥(行玉). 한성부서윤 종적(宗積)의 아들이다. 1723년(경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가 되고, 1730년(영조 6) 사간원정언에 재직중 과격한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 1734년 사간원헌납에 다시 등용되었다. 그해 5월 당론이 다시 고개드는 것을 지적하고, 왕명에 따라 서읍(西邑)을 다녀와 압록강 범월사(犯越事)와 관리들의 치적을 논하고, 황당선(荒唐船)출몰에 대한 방축(防逐)을 소론(疏論)하였다. 1737년 사간, 1739년 의주부윤, 1741년 승정원승지를 역임하고, 1745년 대사간을 거쳐, 1747년 나주목사로 나가 장항포(獐項浦)의 착굴(穿掘)에 따르는 폐단을 거론하였다. 1749년 도승지로 있으면서 임인사화 때 죽은 김성행(金省行), 백망(白望), 장세상(張世相), 묵세(墨世) 등의 증관설원(贈官雪寃)을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