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한경(漢卿). 호는 정수재(靜修齋). 아버지는 이조판서 혜길(惠吉)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안헌징(安獻徵)의 딸이다. 영의정 명길(鳴吉)에게 입양되었다.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의 결과 대신들의 아들이 심양(瀋陽)에 볼모로 갈 때 잡혀갔다가 1642년 최명길이 명나라와 통교한 죄로 심양에 잡혀오자 세 차례나 청군(淸軍)을 찾아가 변호하였다. 그뒤 1645년 최명길이 풀려나 함께 귀국하였다. 1651년(효종 2) 생원이 되어 남별전참봉(南別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아니하였다. 그뒤 음보(蔭補)로 종부시주부, 공조좌랑을 거쳐, 1670년부터 배천군수, 사복시첨정, 영천군수를 역임하고, 1681년(숙종 7) 청풍부사에 이르러 완릉군(完陵君)에 습봉(襲封)되었다. 그뒤 한성부좌윤이 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저서로는 '정수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