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학수(學秀). 호는 검암(黔庵). 광주(光州) 출신. 진사 충정(忠挺)의 아들이다. 1668년(현종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80년(숙종 6) 지평에 이어 정언이 되어 절도정배(絶島定配)와 추록훈(追錄勳)을 신중히 처리하도록 상소하였다. 이듬해 도당록(都堂錄)에 오르고, 1682년 북평사(北評事), 부수찬, 지평, 1683년 장령, 부교리, 헌납, 집의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684년 이후 오랫동안 승지를 지냈으며, 한때 목사를 지낸 바 있다. 문장에 능하고 학행이 뛰어났으며, 민정중(閔鼎重), 김수항(金壽恒) 등과 깊이 사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