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태언(台彦). 호는 운포(雲浦). 학림정(鶴林正) 경윤(慶胤)의 아들이다. 1618년(광해군 10) 경안찰방으로 있다가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623년의 인조반정 이듬해 아산현감, 군자감판관 등을 거쳐 1626년(인조 4) 용인현감, 1628년 형조정랑, 재령군수 등을 역임하고, 1634년 곡산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황해도암행어사 오전(吳○)의 천거로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636년 병자호란을 예측하고 그 대응책을 상소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643년 안산군수로 나가 군폐5조(軍弊五條)를 올려 대부분 채택되었다. 그뒤 호조좌랑, 대구부사, 신천군수, 원주목사 등을 두루 거쳤다. 1658년(효종 9) 강화경력이 되고, 이해 14만석의 정부양곡을 차용하고도 갚지 않는 서울 사대부를 논박하다가 파직당하였다. 그뒤 다시 등용되어 이천부사를 역임하였다. 여러 지방관직을 거치면서 선정을 베풀어 청렴강직한 관원으로 알려졌다. 초서, 예서에도 능하여 일가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