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조윤형(曺允亨)
  • 창녕조씨(昌寧曺氏),  출생~사망 : 1725 ~ 1799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치행(穉行). 호는 송하옹(松下翁). 판결사 하기(夏奇)의 손자로, 개성부유수 명교(命敎)의 아들이다. 문음(門蔭)과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1766년(영조 42) 처음 벼슬길에 나간 뒤 1781년(정조 5) 선공감주부가 되었으며, 1784년 예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을 거쳐 보덕(輔德)이 되어 책례도감상례(○禮都監相禮)를 겸하였다. 그뒤 안악군수, 광주목사(廣州牧使) 등 3현, 2군, 1목의 수령을 역임하고 돌아와 1791년 호조참의가 되었으며, 1797년에는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그림과 글씨에 능하였으며, 그림으로는 풀, 대나무 등의 묵화를 잘 그렸다. 글씨는 초서, 예서를 잘 써 일찍이 서사관(書寫官)을 역임하였으며, 위로는 대신들로부터 아래로 조례(○隷)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그의 글을 얻으려 하였다. 작품으로는 '유점사풍악당대사비 楡岾寺楓嶽堂大師碑', '이보혁무신기공비 李普赫戊申紀功碑', '용흥잠저고정기 龍興潛邸古井記'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