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조석우(曺錫雨)
  • 창녕조씨(昌寧曺氏),  출생~사망 : 1810 ~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치용(稚用). 호는 연암(烟巖). 서울 출생. 윤대(允大)의 손자로, 용진(龍振)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작(申綽)의 딸이다. 1835년(헌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852년(철종 3) 이조참판에 올랐다. 이듬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지방을 다스리면서, 1854년 고조부 하망(夏望)의 문집인 '서주집 西州集'을 간행하였는데, 그 가운데 윤증(尹拯)에 대한 제문 속에서 송시열(宋時烈)을 비난한 글을 삭제한 것이 말썽을 빚어 유생의 줄기찬 항의로 파직당하여 중화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1857년 석방되어 공조참판에 올랐으며, 그뒤 1867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글씨에 뛰어나 일가를 이룰 정도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