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치명(穉明). 창문(昌文)의 손자로, 진사 명복(命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허원(許垣)의 딸이다. 1773년(영조 49) 사마시를 거쳐, 1782년(정조 6) 왕이 인정전(仁政殿)에 친림하여 실시한 경과문과별시(慶科文科別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보직되었다가 정언이 되었다. 이어 1784년 지평에 취임하였는데, 이때 여러 궁방(宮房)의 궁속들이 도서(圖署)로써 땔나무와 곡식들을 광점(廣占)하여 침징(侵徵)하므로, 그 폐단을 제거하도록 상주하였으나 왕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해명하였으며, 그뒤에도 여러번 직언(直言)을 감행하다가 무엄하다는 이유로 창성에 귀양가기도 하였다. 1800년 순조가 즉위하자 경연관을 겸하다가, 내의약원부제조와 호조참의을 거쳐, 1813년(순조 13) 대사간에 올라 국왕에게 여러가지 충언(忠言)을 계속하여 국정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