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민진장(閔鎭長)
  • 여흥민씨(驪興閔氏),  출생~사망 : 1649 ~ 170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치구(稚久). 좌의정 정중(鼎重)의 외아들이며,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예조판서 이성(二星)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0세(1669)에 진사가 된 뒤, 곧 벼슬길에 나가 현령(縣令)을 지내던 1686년(숙종 12)에야 비로소 별시문과에 장원하였다. 할아버지 광훈(光勳)과 아버지에 이어 3대가 계속 장원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삼세문장(三世文壯)이라 일컬었다. 장원하자 규례에 따라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진되어 승정원승지에 임명되었고, 이어 예조참판, 승정원도승지를 거쳐 1696년(숙종 22)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리고 1700년 의정부우의정에 오르면서 죽기까지 형조판서, 의정부우참찬, 사헌부대사헌,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군국(軍國)의 중무(重務)를 맡았다. 성품이 화후(和厚)하여 사림(士林)과의 마찰이 없었고, 효행이 뛰어나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