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춘경(春卿). 호조판서 계의 손자이며, 사옹원첨정 세강(世綱)의 아들이다. 2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92년(숙종 18) 할아버지가 강진의 적소에서 죽자, 천리를 반장(返葬)함에 있어 예에 벗어나지 않았고 이로부터 상심 끝에 괴질을 일으켜 과거에도 나가지 않았다. 1696년 영소전참봉(永昭殿參奉)에 복직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1701년 전설별감(典設別監)이 되고, 종부시주부, 감찰을 거쳐 형조좌랑에 이르렀는데, 소송사건을 신속히 처결하고 판결이 공평하여 형조판서 민진후(閔鎭厚) 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공조, 형조정랑, 금산, 한산군수 등을 역임하고 청풍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다가 55세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