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후명(申厚命)
  • 평산신씨(平山申氏),  출생~사망 : 1638 ~ 1701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천휴(天休). 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副護軍) 형구(衡耉)이며, 어머니는 김하량(金夏樑)의 딸이다.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7년(숙종 3)에 도당(都堂)이 선발하는 홍문록(弘文錄)에 올랐으나 유아(儒雅)가 아니라고 대사간 이원정(李元禎)의 탄핵을 받았다. 그뒤 정언, 지평, 부수찬, 장령, 사간, 강춘도감사(江春道監司), 승지, 형조참판을 거쳐 충청감사 재직시에 친구의 사설 도판(屠販)을 허락해주었다는 죄로 좌의정 윤지선(尹趾善)의 탄핵을 받았으나 참판으로 접반사(接伴使)가 되기도 하였다. 1698년에 감사로 재직할 때 도내 산을 점유하여 묘막(墓幕)을 선구(先構)하였다는 이유로 민진원(閔鎭遠)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곧 동지의금부사에 복직되어 이성휘(李聖輝), 송성(宋晟) 등의 옥사(獄事)를 극론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1700년에 당상(堂上)으로서 죄인 김인지(金麟至)를 편호(偏護)하는 계책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정언 윤헌주(尹憲柱)의 탄핵에 의하여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