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서(李漵)
  • 여주이씨(驪州李氏),  출생~사망 : 1662 ~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징지(徵之). 호는 옥동(玉洞), 옥금산인(玉琴散人). 대사헌 하진(夏鎭)의 아들이며, 이익(李瀷)의 동생이다. 관직은 찰방에 그쳤다. 충주에 살고 있던 그가 관직에 나아가게 되었던 것은 1694년(숙종 20)에 당시 좌의정 이었던 박세채(朴世采)의 천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글씨를 잘 썼는데, 진체(眞體)의 필법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필법을 계발하여, '성재집 性齋集'에서 이르기를 '동국(東國)의 진체(眞體)는 옥동에서 비롯되었다. '라고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