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중습(仲習). 귀(貴)의 손자로, 판서 시방(時昉)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수검(李守儉)의 딸이다. 1651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55년(효종 6) 전설(典設)로 등용되고, 그뒤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 형조좌랑, 호조좌랑, 호조정랑 등을 지내면서 낭관으로 10여년, 그뒤 남원부사,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상주목사 등을 지냈다. 상주목사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고 도적을 잡은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특진되고 부상으로 말을 하사받았다. 그뒤 여주목사, 담양부사를 거쳐, 경주부윤이 되었을 때 선정을 베푼 공으로, 왕으로부터 칭찬하는 글과 말 한필을 하사받았다. 이어 공홍도병마절도사, 호조참의, 한성부우윤, 한성부좌윤, 경연관 겸 부총관을 거쳐, 1688년(숙종 14) 총융사, 공조참판을 역임하고, 이듬해 나주목사로 내려갔다가 병으로 해직되었고, 이어 안동목사를 제수하였으나 부임을 꺼려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