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중보(重寶). 호는 삼휴당(三休堂). 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호(鎬)이다. 1660년(현종 1)에 진사가 되고, 1676년(숙종 2) 강릉참봉에 기용되었으며, 1678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 정언, 수찬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교리로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 승지가 되고, 1689년에 충청도관찰사, 1692년에 예조참의 등을 역임, 1693년 대사간이 되어 이듬해 왕의 유행(遊幸)을 간하다가 파직되었다. 1701년 장희빈(張禧嬪)을 사사하려 하자 이를 극력 반대하다가 홍원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뒤에 복관되고, 회덕의 용호서원(龍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