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0년(현종 1) 진사시에 합격한 뒤 1663년 선교랑(宣敎郞)의 신분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로 지평, 정언, 헌납, 집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숙종 초년 집권세력의 한 사람으로서, 1675년에는 김수항(金壽恒)을 탄핵하여 유배시키고, 허목(許穆)과 윤휴(尹○)의 대립에는 허목을 편들었다. 1678년 집의로 재직중에는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 으로, 1689년에는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부사(副使)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축출되었다가, 1689년 기사환국 때 승지로 등용되었다. 목민관으로는 경주부윤 까지 승진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행동이 의젓하였다.
1660년(현종 1) 진사시에 합격한 뒤 1663년 선교랑(宣敎郞)의 신분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로 지평, 정언, 헌납, 집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숙종 초년 집권세력의 한 사람으로서, 1675년에는 김수항(金壽恒)을 탄핵하여 유배시키고, 허목(許穆)과 윤휴(尹○)의 대립에는 허목을 편들었다. 1678년 집의로 재직중에는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 으로, 1689년에는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부사(副使)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축출되었다가, 1689년 기사환국 때 승지로 등용되었다. 목민관으로는 경주부윤 까지 승진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행동이 의젓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