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정이(正而). 증조부는 영의정 노수신(盧守愼)이며, 아버지는 노도형(盧道亨)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 음보(蔭補)로 직장(直長)에 기용되어 163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에 호종,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이때 유백증(兪伯曾)이 김류(金○), 윤방(尹昉)의 실정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파직당하자, 죄가 큰 자는 벌하지 않고 상소한 자를 벌한다 하여 유백증을 구출하려다 파직당하였다. 1645년 홍원목사가 되었는데, 이듬해 윤방의 아들 이지(履之)가 함경도관찰사로 부임하자 사직하였다. 그뒤 삼사, 세자시강원 등의 관직 물망에 올랐으나 모두 저지당하였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 음보(蔭補)로 직장(直長)에 기용되어 163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에 호종,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이때 유백증(兪伯曾)이 김류(金○), 윤방(尹昉)의 실정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파직당하자, 죄가 큰 자는 벌하지 않고 상소한 자를 벌한다 하여 유백증을 구출하려다 파직당하였다. 1645년 홍원목사가 되었는데, 이듬해 윤방의 아들 이지(履之)가 함경도관찰사로 부임하자 사직하였다. 그뒤 삼사, 세자시강원 등의 관직 물망에 올랐으나 모두 저지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