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정응(定應). 호는 동애(東厓). 후징(厚徵)의 아들이다. 1678년(숙종 4) 통덕랑으로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80년 정언이 되고, 이듬해 홍문록(弘文錄)에 녹선되었다. 1683년 부수찬으로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8년 수찬이 되고, 1689년 교리를 거쳐 사간이 되어, 지난해 희빈 장씨(嬉嬪張氏) 소생인 왕자의 명호(名號)를 정하는 일과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서인의 거두 송시열(宋時烈)과 김수항(金壽恒) 등이 시기상조라고 상소한 것에 논박하여 이들을 사사(賜死)하게 하고 남인이 세력을 잡은 이른바 기사환국을 불러일으켰다. 1690년 대사간이 되고, 1693년 도승지에 이어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