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강영(姜怜)
  • 진주강씨(晋州姜氏)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정오(正吾). 호는 잠은(潛隱). 할아버지는 응교 덕서(德瑞), 아버지는 도사 윤조(胤祖)이다. 신흠(申欽)의 문인으로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태조 비 한씨의 제릉(齊陵)의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97년 세마에 임명되고 이어 시직(侍直) 부수(副守)로 승진하였다. 1599년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종향할 것을 상소하였는데 처음에는 허락받지 못하다가 뒤에 허락을 받았다. 계모 윤씨가 죽자 효행이 지극함을 인정받아 남구만(南九萬)의 천거로 성현찰방(省峴察訪)에 제수되었다. 이때 그곳에 가축의 병이 크게 유행하여 소가 많이 죽었는데 영동에서 소를 사서 역호(驛戶)의 대소를 헤아려 나누어 기르게 하여 폐농을 면하게 하였으며, 소도 많이 번식시켰다. 그리하여 역졸들은이 소를 '강후우(姜候牛)'라 하였다.이 공으로 산음현감(山陰縣監)으로 승진하여 선정을 베풀고 임기가 끝나 떠날 때는 이민(吏民) 수천명이 울었다고 한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후에는 심장세(沈長世), 홍우정(洪宇定), 민양(閔瀁), 홍석(洪錫) 등과 같이 태백산 춘양동(春陽洞)에 은거하였는데, 이들을 태백오현(太白五賢)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