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손만웅(孫萬雄)
  • 경주손씨(慶州孫氏),  출생~사망 : 1643 ~ 1712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적만(敵萬). 호는 야촌(野村). 아버지는 신의(愼儀)이며, 어머니는 이심근(李深根)의 딸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해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크게 명성을 떨치고 성균관에 등용되어 오수찰방(獒樹察訪), 전적을 거쳐 공조, 예조, 형조의 좌랑을 지냈다. 1674년 현종이 죽었을 때 도감랑(都監郞)으로서 모든 일을 순서있게 처리하자 당상관 들이 그 재주를 칭찬하고 일마다 그와 의논하여 행하였다. 1675년(숙종 1) 병조좌랑에서 영광군수로 내려가 선정을 베풀었다.

정언, 호조정랑, 춘추관기사관을 거쳐 지평으로 있을 때 김수흥(金壽興)을 서용하려고 하자 자의대비복제문제(慈懿大妃服制問題)에서 그가 효종을 '체이부정(體而不正)'이라고 하여 파직당하였던 죄목을 내세워 조리정연하게 논핵(論劾)하여 취소시켰다.

1677년 사예로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사도시정(司導寺正), 장령, 공주목사, 나주목사, 괴산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나, 가정이 빈한하여 서책과 장복(章服)을 팔아서 부모를 봉양하였으며, 청주목사에 제수되었다가 파직되었는데 대신들이 상주하여 유임되었다. 그뒤 동래부사를 거쳐 경주부윤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