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자약(子約). 병조참판 대정(大禎)의 아들이다. 1605년(선조 38)에 음보(蔭補)로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임명되었다가 시직(侍直)에 전임되고, 같은해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06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주서를 거쳐 평안도병마절도사의 막료(幕僚)가 되었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일찍이 장인 유영경(柳永慶)이 영창대군(永昌大君)으로 세자로 삼으려 하였던 사실로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 등의 탄핵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자신도 탄핵을 받자 관직에서 물러나 동교노원(東郊蘆原)에 은둔하여 경사(經史)를 읽으며 10여년을 지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다시 기용되어 함흥부통판을 거쳐, 형조, 호조, 예조의 정랑을 역임하였다. 이어 전적, 사예를 거쳐 1635년 장령, 이듬해 필선에 이어 강계부사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도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