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자신(子新). 호는 지지제(知止齋). 한성부서윤 상린(商麟)의 아들이다. 1728년(영조 4) 제릉참봉(齋陵參奉)에 천거되고 용궁현감(龍宮縣監)을 지내다가 1736년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사헌부지평, 사간원헌납 등을 거쳐 1744년 필선에 제수되고 이어 우부승지가 되었다. 1746년 유봉휘(柳鳳輝) 여당을 제거해야 한다고 극론하여 승지에서 파직되었다. 다음해 밀양부사로 나갔고 수령으로 나이가 많다 하여 판결사로 치사(致仕)하였다. 일찍이 아악청랑(雅樂廳郞)이 되어 왕으로부터 새 종(鐘)의 제작명령을 받았을 때, 막바로 신구율척(新舊律尺)을 상고(詳考)하여 그 장단을 가려 완성하였으므로 왕이 세종 조의 박연(朴堧)과 비교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고 학문에 파고들어 특히 이수(理數)에 통달하였고, 뒷날 경서(經書)와 음양율력(陰陽律曆)에 밝아 그 이름이 높았다. 그가 사는 집에 지지재(知止齋)라는 편액을 써 붙여 항상 누거비식(陋居菲食)하며 청백하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