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민구(李敏求)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589 ~ 167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洲), 관해(觀海). 이조판서 수광(○光)의 아들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12년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수찬으로 등용되었다. 이어서 예조, 병조좌랑이 되었고, 1622년 지평이 되고, 이듬해 선위사(宣慰使)로 일본사신을 접대하였다. 교리, 응교 등을 거쳐 1623년(인조 1) 사가독서를 하였고,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626년 대사간이 되고, 이듬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병조참의가 되어 세자를 모시고 남쪽으로 난을 피하였다. 그해 승지가 되었다가 외직인 임천군수로 나갔다. 1636년 이조참판, 동지경연사(同知經○事)를 역임하고 이해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도검찰부사(江都檢察副使)가 되어 왕을 강화에 모시기 위하여 배편을 준비하였으나 적군의 진격이 빨라 어가의 길을 막았으므로 왕이 부득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소임을 완수할 수 없었다. 난이 끝난 뒤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죄로 아산에 유배되었다가 영변으로 옮겨졌다. 유배지에서 책임을 통감하면서 날마다 눈물로 자책을 하다가 1649년에 풀려났다. 그뒤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고 사부(詞賦)에 능하였을 뿐 아니라 저술을 좋아해서 평생에 쓴 책이 4, 000권이 되었으나 병화에 거의 타버렸다. 저서로는 '동주집', '독사수필 讀史隨筆', '간언귀감 諫言龜鑑', '당률광선 唐律廣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