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자성(子誠). 아버지는 집의 양(讓)이다. 1679년(숙종 5) 진사가 되고, 통덕랑으로 1692년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되었다. 그뒤 성균관전적, 형조좌랑을 거쳐 헌납에 오르고, 1701년 지평으로서 군비의 강화와 국가의 재정을 충실히 할 것을 건의하였으며, 왕자들의 원찰(願刹)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 있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1703년 장령이 되고, 1706년 사간을 지내고 동래부사에 이르렀다. 이때 외국과 서신을 교환하는 가운데 어휘(御諱)를 잘못 쓴 일이 있었으나 살피지 못하여, 국가를 욕되게 했다는 탄핵을 받았다. 1708년 홍문록(弘文錄)에 등록되고, 1712년 향리에 물러나 있으면서 선대 세종의 선정과 학문적 열의를 본받아 선정을 베풀 것을 상소하였다. 이듬해 집의가 되었으며 1714년 사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