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일지(一之). 호는 송옹(松翁) 또는 졸옹(拙翁). 좌의정 명균(命均)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1733년(영조 9) 진사가 되고, 174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양관(兩館: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과 대사헌, 이조판서 등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766년에는 영의정에 올라 할아버지 종태(宗泰), 아버지 명균에 이어 3대째 상신(相臣)이 되었다. 대사헌으로 있을 때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비행을 조작하여 영조에게 허위보고한 김상로(金尙魯), 홍계희(洪啓禧) 일당을 탄핵하였으며, 시강원(侍講院)의 빈객(賓客)으로 장헌세자를 교도하여 그 보호에 힘썼다. 장헌세자가 죽고 그의 아들 정조가 동궁에 있을 때 정경(正卿)의 직위에 있으면서 동궁의 요속(僚屬)이 되어 보좌하였으며, 또 왕위에 오르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여 뒤에 정조의 추앙을 받았다. 천성이 청렴결백하여 세속과 어울리지 않았으며, 정조 때 청백리로 현창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나 영유(永柔)의 '제갈량묘악비문천상추배기사비 諸葛亮廟岳飛文天祥追配紀事碑'와 양주(楊州)의 '풍덕부사서명무갈 豊德府使徐命茂碣'을 썼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