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일원(一元). 아버지는 구문주(具文周)이고, 어머니는 이명하(李鳴夏)의 딸이다.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 사서, 지평을 역임하였다. 1716년 장령으로 있을 때 이돈(李墩)에 대한 죄과를 공정하게 조사하지 않고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재조사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자 재조사를 상소했던 죄로 진해현감(鎭海縣監)으로 강등되었다. 1717년 야인(野人)으로서 정권장악을 위해 서로 경쟁하던 남인과 소론에 대한 숙종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하는 상소를 연명(聯名)으로 올렸다. 그가 죽은 뒤인 1768년(영조 44)에는 대신(臺臣)으로서의 그의 행동이 높이 평가되어 손자인 구수국(具壽國)이 공조참의에 특별제수되었다.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 사서, 지평을 역임하였다. 1716년 장령으로 있을 때 이돈(李墩)에 대한 죄과를 공정하게 조사하지 않고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재조사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자 재조사를 상소했던 죄로 진해현감(鎭海縣監)으로 강등되었다. 1717년 야인(野人)으로서 정권장악을 위해 서로 경쟁하던 남인과 소론에 대한 숙종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하는 상소를 연명(聯名)으로 올렸다. 그가 죽은 뒤인 1768년(영조 44)에는 대신(臺臣)으로서의 그의 행동이 높이 평가되어 손자인 구수국(具壽國)이 공조참의에 특별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