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일소(逸少). 호는 백천당(百千堂). 종친부전적(宗親府典籍) 사겸(士謙)의 아들이다. 열네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큰형인 숙(肅)을 따라 공부하였고, 장유(張維)의 문하에 들어갔다. 열아홉살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1646년(인조 24)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전적, 병조좌랑, 정언을 역임하였다. 그뒤 1650년(효종 1) 세자시강원사서로 춘추관기사관을 겸하면서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다음해 다시 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었고, 1654년에는 지평에 있으면서 당시의 급무(急務)로서 여덟가지 조항을 들어 진소(陳疏)하였다. 요약하면 넓게 언로를 열고, 예(禮)로 신료(臣僚)를 대우하고, 공명하게 인재를 써야 하며, 수령은 백성을 사랑으로 다스릴 책무가 있고, 내수사(內需司)를 고쳐 유사(有司)에 붙일 것, 입안(立案)을 파하여 궁노(宮奴)를 거두며, 병폐를 밝혀 민정(民情)을 위로하고, 군정(軍政)을 정비하여 백성의 고통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품성이 순수하고 깨끗하며 벼슬에 연연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척화삼신전 斥和三臣傳', '만세감 萬世鑑' 4권, '백천당유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