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심(申鐔)
  • 평산신씨(平山申氏),  출생~사망 : 1662 ~ 1715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익중(翼仲). 호는 봉주(鳳洲). 집의 명규(命圭)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감조관(監造官) 남호학(南好學)의 딸이다. 1704년(숙종 30)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사서, 지평, 정언을 거쳐 도당(都堂)의 홍문록에 올랐으며 지제교(知製敎)로서 우윤 김횡치(金○致)의 제문을 지었다. 수찬, 헌납, 교리를 거쳐, 부사과 때에 타고난 성격이 추려(○○)하고 지론이 괴패(乖悖)하다는 간원(諫院)의 탄액으로 파직당하였다. 이조참판 이만성(李晩成), 이조참의 이태좌(李台佐), 이조정랑 이재(李縡)의 상소로 교리에 복직되었다. 응교, 집의를 거쳐, 승지 때에 진하(陳賀)를 하지 않은 예관(禮官)은 바꾸어야 한다고 상주, 예조판서가 바뀌었으며, 이조참의, 대사간을 지냈다. 문학언의(文學言議)에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