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심성희(沈聖希)
  • 청송심씨(靑松沈氏),  출생~사망 : 1684 ~ 1747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이천(而天). 능주목사 봉휘(鳳輝)의 아들이다. 약관(弱冠)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가 장의(掌議)가 되었다. 1715년(숙종 41) 유계(兪棨)의 '가례원류 家禮源流' 간행 때 윤증(尹拯)이 스승인 유계를 배반했다 하여 심히 배척하였고, 이어 이진유(李眞儒)가 윤증을 비난한 정호(鄭澔)의 발문을 불사르게 하자, 그는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이를 항소하고 권당(捲堂)까지 하였으나 소론의 득세로 축출되었다. 얼마 후 노론의 복귀로 익릉참봉(翼陵參奉)에 등용되었고,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주서가 되었다가 설서로 옮겼다. 그뒤 부수찬을 거치는 등 삼사의 요직을 역임하고 대사간 및 충청, 경상도의 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단아하고 재식이 뛰어났다고 하며, 삼사에 재직할 때는 직언을 잘 하고 외직에 나가서는 화민정속(化民正俗)에 힘써 많은 명현과 효자, 열녀를 정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