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이견(而見). 충청도 홍성 출신. 아버지는 두정(斗井)이다. 진사가 되어 성균관 유생으로 있다가, 1718년(숙종 4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설서(說書)를 거쳐 1720년(경종 즉위년) 정언이 되었다. 이때 너무 관인하여, 왕으로부터 국론에 대한 올바르고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영조가 즉위한 뒤 문학, 지평, 수찬, 교리 등을 지내면서 소론의 처결과 노론 4대신(四大臣) 복작(復爵)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북평사를 거쳐 시독관으로 육진(六鎭)의 병폐를 정리하는 상소를 올려 시행하도록 하였다.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물러났다가, 다시 1731년 승지에 이어 대사간, 이조참의, 승지, 개성부유수를 역임하였다. 1738년 진하 겸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성품은 매우 침착, 관인하였으며, 의리와 처세에 항상 조심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