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의경(儀卿). 호는 신암(愼菴). 이조판서 윤대(允大)의 아들이다. 1802년(순조 2)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805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 부교리, 필선, 이조참의, 대사성 등을 역임한 뒤, 1823년에 한성부판윤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다. 그뒤 전라도관찰사로 있을 때 둔전(屯田)의 세제문제(稅制問題)와 관련, 조정의 시책에 대한 전라도 지방의 민폐유무(民弊有無)를 보고하는 일에 있어 왕을 속였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고, 명천, 진도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보내다가 2년 뒤에 풀려나왔다. 1833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일이 있으며, 헌종 때 공조판서를 거쳐 대사헌, 이조판서를 지낸 뒤 관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