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윤문(允文). 호는 금주(錦州). 이조판서 종영(鍾永)의 아들이다. 1827년(순조 27)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32년 규장각대교를 거쳐 수찬, 응교 등을 역임하였으며, 1837년(헌종 3) 대사성에 이르렀다. 이어 1841년 이조참의가 되었고, 그해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이 해는 풍양조씨가 득세하여 안동김씨(安東金氏) 세력에 대항하던 시기로 그의 작은아버지인 인영(寅永)이 영의정에 올랐으며, 그도 관찰사에서 돌아와 호조판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