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윤경(允卿). 호는 용와(○窩). 아버지는 봉시(奉時)이며, 어머니는 아주신씨(鵝洲申氏)로 통덕랑 이징(以徵)의 딸이다. 1719년(숙종 45) 증광회시에 병과로 급제, 예조좌랑과 정랑을 역임하다가 곧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박곡〔瓢谷〕이라는 곳에서 지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 그 여파가 영남에 미치자 격문을 내어 의병을 일으켜 출동하려 할 때 관군에 의하여 역적이 잡혔다는 전갈을 받고 해산하였다. 1729년 다시 병조정랑이 되고, 사헌부장령을 거쳐 종성부사가 되었다. 그뒤 장례원판결사와 영해부사를 역임하고, 1745년 공조참의가 되었다. 1746년 풍기군수가 되어 임지에 도착하였을 때 흉년이 극심한 것을 보고 곧 상관에게로 달려가 구황책(救荒策)을 건의하고 돌아와 임소에서 죽었다. 죽은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용와집' 4권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