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유호(攸好). 좌의정 치화(致和)의 증손으로, 혁선(赫先)의 아들이며, 효선(孝先)에게 입양되었다. 1715년(숙종 4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검열, 수찬, 교리,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721년(경종 1) 지평으로 있을 때 김일경(金一鏡) 등과 더불어 소론계열로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4대신을 탄핵, 신임사화를 주도하였으나 1725년 영조 즉위로 노론이 득세하자 관직에서 삭출당하였다. 2년 후 정미환국으로 세자시강원사서로 다시 기용된 뒤, 응교, 승지, 동지의금부사,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1736년(영조 12) 등극진하사(登極進賀使)의 부사로서 정사 함평군(咸平君) 홍(泓)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호조판서를 거쳐 1746년 우의정에 특진, 곧 좌의정에 승진되고, 1748년 영돈령부사로서 동지 겸 사은사(冬至兼謝恩使)가 되어 효현황후(孝賢皇后) 시호 올린 것을 진하하고 연공(年貢)을 진헌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가던 중 병사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