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광익(李光瀷)
  • 평창이씨(平昌李氏),  출생~사망 : 1703 ~ 178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원숙(源叔). 판서 계남(季男)의 9세손으로, 태석(泰錫)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최수(崔琇)의 딸이다. 1733년(영조 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그뒤 여러 벼슬을 거쳐 1743년에 지평이 되고, 이어 1747년에는 장령을 역임하였다. 그뒤 헌납을 역임하고 한성부좌윤이 되었다. 1759년 종성부사로 재직시 치적이 뛰어나다는 북도어사의 보고로 왕으로부터 숙마(熟馬)를 하사받았다. 특히, 초산부사로 재임중에는 공미(公米) 재고량을 일정량만 남기고 주린 백성들에게 분급하여 구휼에 진력하였다. 또한, 외직에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읍고개에서 10여 거마가 구관(舊官)이 되는 그의 이삿짐을 실어나르러 오자 보낼 물건이 없다고 할 정도로 청렴한 목민관 이었다. 관찰사 이이(李彛)가 임금에게 올린 보고에 의하면, 그는 백성의 소(訴)가 있을 때마다 공평하게 시비를 가렸고, 부정한 수뢰행위는 일절 삼갔으며, 스스로 자기를 규율하여 백성을 위한 선정에 전력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