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원덕(元德). 교리 효수(孝修)의 아들이다. 1766년(영조 42)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이듬해 정언을 거쳐 1772년에는 승지가 되었으며, 다음해 대사헌을 지냈다. 1780년(정조 4) 전라도관찰사로 나가 그 지방의 군제(軍制)를 개편하여 국방강화에 노력하였으며, 1784년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군직(軍職)개편을 통해 무인(武人)들의 사기진작에 주력하였다. 1786년에는 좌참찬에 올랐으며, 2년 뒤에는 공시당상(貢市堂上)이 되어 국경지방의 무역을 관장하였다. 특히 그는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88년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일으켜 크게 공헌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사당을 새로 건축하게 하였고, 1790년에는 다시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유응부(兪應孚)의 묘비를 잘 관리하도록 경제적 뒷받침을 하였다. 1795년에는 판의금부사를 거쳐 한성부판윤, 수원부유수를 지냈다. 1800년(순조 즉위년)에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에 의해 경흥에 유배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