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우경(虞卿). 호는 약허(若虛).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 종신(宗愼)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보임되었다. 1722년(경종 2) 영조가 왕세제로 있을 때 소론(少論)의 과격파인 김일경(金一鏡) 등이 환관 박상검(朴尙儉), 문유도(文有道) 등을 시켜 세제를 죽이려 하자 이를 탄핵하여 음모를 막았다. 영조가 즉위한 뒤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로 나갔고, 1725년(영조 1) 사서(司書), 필선(弼善), 보덕(輔德), 집의, 헌납(獻納)을 지내고, 1731년 사간, 부응교, 승지를 거쳐 1741년 개성유수가 되었다. 이듬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로 갔다가 귀국한 뒤 한성부좌윤을 지내고 대사헌, 경기관찰사, 한성부우윤,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175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과중한 조세부담을 삭감하게 하고 관하지방관들의 부정을 엄격히 처벌하는 등 치적을 올렸다. 영조가 죽자 거듭 왕계(王系)의 정통을 지키는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