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유언명(兪彦明)
  • 기계유씨(杞溪兪氏),  출생~사망 : 1666 ~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용회(用晦). 판관 정기(正基)의 아들이다. 1699년(숙종 25)에 통덕랑으로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703년 지평으로 있을 때에 북성(北城) 쌓는 일을 중지하고 기민을 구하라는 상소를 올려 왕이 가납하는 등 신임을 얻었다. 그리고 박세당(朴世堂)의 훼경(毁經) 사실을 놓고 노론들이 논란을 벌일 적에 이를 옹호하여 소론의 소장으로 지목을 받았다. 1705년 소론 임보(林溥)와 남인 이잠(李潛)이 세자(世子: 뒤의 景宗) 모해설이 있다고 노론 김춘택(金春澤)을 공격하였는데, 이에 연루되어 신문을 받았으나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그뒤 그의 아버지가 후취(後娶)의 행실을 들어 이혼하여줄 것을 청하였는데, 처음에는 여러 대신들이 의논하여 이혼을 결정하였으나 음행의 사실이 없어 국전(國典)에 어긋난다 하여 허락받지 못하였다. 그뒤 계모는 관아에서 언명에게 죄를 전가하였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누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변명도 못하고 관계에서 물러났다. 특히, 문장이 뛰어나 재상 윤지완(尹趾完)도 칭송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