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옥여(玉汝). 호는 만명헌(○命軒). 예천 출신. 세환(世煥)의 손자이고, 정언 희민(希閔)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권태행(權泰行)의 딸이다. 1719년(숙종 45) 사마시에 합격,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 무신란(戊申亂)때는 향인(鄕人)의 의병장이 되어 정부군과 합세하여 난의 평정에 협력하였다. 1742년에 지평이 되어 상소를 통하여 왕의 탕평책 실시에 노심초사함을 찬양하였다. 한편 소를 올려 어제(御製) 20어(語)로 금석지훈(金石之訓)을 삼을 것, 지방수령들의 탐오(貪汚)가 날로 심하여지므로 이를 엄단할 것, 북관유민(北關流民) 중 한양으로 들어온 자들에게 식량을 배급하여 쇄환(刷還)하도록 할 것 등을 건의하여 이를 시행하도록 하였다. 인품이 검약하고 자신에게 엄격하였으며, 효우(孝友)가 돈독하고 세상일에는 서투른 점이 많았다. 평소 글에 능하여 유고(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