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오시만(吳始萬)
  • 동복오씨(同福吳氏),  출생~사망 : 1647 ~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영석(永錫). 호는 춘헌(春軒). 호조판서 정일(挺一)의 아들이고, 예조판서 정위(挺緯)에게 입양되었다. 1666년(현종 7) 사마시에 합격, 1676년(숙종 2) 정시문과에 장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고, 이어 지평을 지내고, 1679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수찬(修撰), 부수찬, 부교리, 헌납, 교리 등을 역임하고, 다음해 이조좌랑을 거쳐 1689년 승지에 올랐다. 이듬해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부당하다 하여 다시 승지에 머물렀다. 지조가 깨끗하고, 겸허 담백하였으나, 1694년 당화(黨禍)를 입어 용천, 강서 등지로 유배되니 전후 10여년간에 이른다. 유배중에도 경학(經學)에 힘썼으며, 문장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