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여필(汝弼). 호는 돈우당(遯愚堂). 박수경(朴守敬)의 손자이고, 도사 박영(朴瑛)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영문(李榮門)의 딸이다.
1642년(인조 20) 진사가 되고, 1651년(효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6년(숙종 2) 장령이 되었으며 이어 헌납을 역임하였다. 1678년에는 궐내의 기강이 문란한 사실을 들어 소를 올렸다. 이해에 집의를 거쳐서 이듬해에 사간이 되었다. 1689년 공조참의가 되고, 이듬해에 예조참의를 거쳐 승지가 되었다. 성품이 조절청고(操節淸孤)하며 사심이 전혀 없어 높은 벼슬을 지냈는데도 가산이 별로 없었으며 집마저도 비바람을 겨우 막을 정도였다고 한다.
1642년(인조 20) 진사가 되고, 1651년(효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6년(숙종 2) 장령이 되었으며 이어 헌납을 역임하였다. 1678년에는 궐내의 기강이 문란한 사실을 들어 소를 올렸다. 이해에 집의를 거쳐서 이듬해에 사간이 되었다. 1689년 공조참의가 되고, 이듬해에 예조참의를 거쳐 승지가 되었다. 성품이 조절청고(操節淸孤)하며 사심이 전혀 없어 높은 벼슬을 지냈는데도 가산이 별로 없었으며 집마저도 비바람을 겨우 막을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