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여주(汝胄). 유(裕)의 후손으로 안주에서 세거하였다. 1717년(숙종 4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를 거쳐 경양도찰방(慶陽道察訪)의 임기를 마치고 전적에서 직강으로 승진되었다. 1725년(영조 1) 영조 즉위로 노론이 세력을 잡자, 신임사화 때 노론을 배척한 소론 이광좌(李光佐), 조태억(趙泰億) 등이 아직 조정에 있음을 보고 이를 논척하다가 투옥되었으며 곧 풀려나왔다. 그뒤 사예, 맹산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평정되자 선전관으로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른 뒤 고향에 돌아와 유유자적하다가 노인직(老人職)으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