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여구(汝久). 정랑 이경(以經)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도승지 정륜(鄭○)의 딸이다. 1693년(숙종 19)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95년 남구만(南九萬)이 6품으로 올려줄 것을 청했으나, 사헌부 로부터 한원(翰苑)의 피천인(被薦人)으로서 사소(邪疏)에 참여하고 인망이 없으므로 삭천(削薦)되어야 한다고 탄핵을 받았다. 1701년 사서(司書)가 되었으며, 이듬해 충주 유학(幼學) 최세일(崔世鎰)이 알성시의 부정을 상소한 가운데 알성시에 합격한 홍만우(洪萬遇)가 그의 사촌으로 합격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1705년 장령이 되고, 이듬해 필선, 수찬, 헌납 등을 지냈으며, 홍문록(弘文錄)과 도당록(都堂錄)에 올랐다. 1717년 중시(重試)에 급제하여 승지가 되었다. 1722년(경종 2)에 경주부윤이 되어 경주에 있는 송시열(宋時烈)의 영당(影堂)을 철거하도록 하고, 이를 반대하는 선비들을 감옥에 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