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여간(汝○). 형(瀅)의 아들이다. 한양에서 자랐으며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올라 봉사로 있으면서 1790년(정조 14)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록(弘文錄), 도당록(都堂錄)에 올랐다. 1796년 사헌부집의로 재임시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순조가 즉위하자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이조참판, 홍문관부제학, 한성부판윤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806년(순조 6) 대사헌에 임명되자 전왕인 정조의 뜻에 위배되는 말을 하여 사사(賜死)된 우의정 김달순(金達淳)과 친밀하였다는 이유로 양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광양현에 유배되었다. 죽은 뒤 판서의 직첩이 환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