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인(李𡐔)
  • 벽진이씨(碧珍李氏),  출생~사망 : 1608 ~ 1668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야수(野叟). 호는 소옹(素翁). 이조참판 상급(尙伋)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호가(扈駕)하였다. 1642년 예문관검열, 봉교, 전적, 지평, 1645년 필선을 지냈다. 1646년 개성경력(開城經歷)으로 나가 부속(府俗)이 음사(淫祀)를 숭상하므로 이를 일체 금하였다. 1649년 영암군수로 있을 때 민막 십여사(民瘼十餘事)를 상소하여 모두 가납(嘉納)되었다. 1652년(효종 3) 예조정랑으로서 영남의 재상(災傷)을 조사하여 백성을 괴롭히는 토호(土豪)와 서리들을 철처히 규찰하였으나, 이로 말미암아 구허날무(構虛揑無 : 헛된 죄를 꾸미고 없는 사실을 날조함)되어 원성으로 정배되었다가 다음해 풀려났다. 1657년 성균관직강, 북청판관, 1658년 사예, 양양부사, 1661년(현종 2) 정주목사 등을 지냈다. 이듬해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청나라 역관의 힘을 믿고 작폐(作弊)하는 자들을 엄단하였다. 1664년 동부승지, 성주목사, 1666년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