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안숙(晏淑). 호는 부익자(孚翼子), 포옹(抱翁). 철(澈)의 손자이며, 강릉부사 종명(宗溟)의 아들이다. 1618년(광해군 10)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피신하였으나 성이 함락되자 자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 난 후 수년간 은거생활을 하다가 동몽교관에 제수된 뒤 의금부도사,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 수운판관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용안현감으로 나가 치적(治蹟)을 올렸으며, 이후 비안현감, 종부시주부, 진천현감, 금구현령, 한성부서윤 등을 역임하였다. 1661년 지평으로 발탁되었으나 교리 민유중(閔維重) 으로부터 인망(人望)에 부응(浮應)하는 인물이라는 탄핵을 받은 바 있었다. 이후 간성군수, 시강원진선을 거쳐 1668년 장령에 이르렀으며, 이해에 죽었다. '어록해 語錄解'를 중수, 간행하였다. 초시(初諡)는 정절(貞節) 이었으나 뒤에 문절(文節)로 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