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순오(舜五). 증조부는 영의정 종태(宗泰)이며, 할아버지는 좌의정 명균(命均)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지수(志修)이다. 1772년(영조 48) 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한 뒤 1775년 양주심찰어사(楊州審察御史)가 되어 군기(軍器)를 점검하고, 이어서 겸보덕, 승지,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777년(정조 1) 세도가 홍국영(洪國榮)의 중상(中傷)으로 방축(放逐)당하여 10여년간 죄인으로 있다가, 풀려나 1794년 홍문관, 예문관대제학이 되고, 이듬해 대사간, 대사헌을 거쳐 1796년 호군을 역임하고 봉조하(奉朝賀)로 있다가 죽었다. 선조 때부터 대대로 문형(文衡)을 지낸 명문가에 태어나 품행이 방정하고 성품이 고결하였으며 학문에 열중, 특히 경사(經史)에 능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